[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8) 독서의 계절에 추천하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모음
윤혜영 선임기자 | 기사작성 : 2018-09-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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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변신, '그래픽 노블'인 '사브리나'가 문학 경계 허물어

여장남자와 살인마,
사치와 평온과 쾌락, 타나토노트 등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과거 만화책은 그것이 베풀어주는 즐거움과는 별개로 예술의 변방에서 취미생활의 하위장르로 업신여김을 받고는 했다.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반기는 분위기였지만(나를 보면 상시 어두웠던 모친의 낯이 찰나 밝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만화방에 간다고 하면  등짝을 두들겨 맞았다. 누구나 대놓고 만화를 본다고 하면 환영받지는 못했다. 만화가 가진 가벼움과 키치적인 속성이 그랬다.

어린시절 동네에 두어 곳 위치한 만화방은 하릴없는 청춘들의 소굴이었다. 대본소라고 부르기도 했던 그곳은 암굴처럼 어둑시글 했고, 짜장면과 담배와 곰팡이와 발꼬랑내가 뒤섞인 복합적인 냄새로 정체성을 다졌다.

의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사람이 출입하는 곳은 절대 아니라는 선입견을 심어주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엔 늘어난 츄리닝이나 누렇게 뜬 런닝을 걸친 차림의 동네 백수들이 발가락 사이를 후빈 손으로 코를 파거나, 라면 건더기가 낀 잇몸을 쑤시며 만화책이나 무협소설을 읽는 곳이었다.

그러나 만화가 가진 천박한 이미지와는 반대로 그것들이 가져다 준 꿈과 모험이 가미된 오아시스는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던 시대의 하루살이들에게 신세계를 펼쳐주었다. 우리들은 저마다의 골방에 틀어박혀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꿈은 멀고 현실은 남루하다.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만화와도 이별하게 되었다.
소설과 에세이와 시와 각종 월간지, 계간지들과 외도하다가 다시 만화와 재회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그래픽 노블이란 장르를 꽤 많이 읽는 편이다.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만화 소설의 조합으로 문학이 깊이 개입하여 예술성이 강한 만화를 지칭한다. '만화=가볍다'는 오해 덕에 '예술이다 아니다' 정체성의 논란이 계속되기는 했지만, 2018년 세계 3대 문학상중 하나인 맨부커상 후보에 닉 드러나소의 '사브리나'가 선정되면서 그래픽 노블이 문학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물결로 나아가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아트 슈피겔만(Art Spiegilman), 제프 르미어(Jeff Lemire),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의 작품들을 그래픽으로 칭할까? 노블로 칭할까? 나는 그 어떤 노블보다 더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좋은책은 일회성의 오락거리로 휘리릭 읽고 그치는 책이 아니라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사골곰탕처럼 의미가 깊어지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악스럽던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꺽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다. 그 어느때보다 대기가 맑고 깨끗하여 머릿속이 청명하기 그지없다. 올해 들어 재미있게 읽었던 그래픽 노블들을 몇 권 소개한다. 선정은 나의 개인적 취향에 근거하므로 비난을 하시려거든 별도의 이메일을 이용해 주시길 바란다.


■ 클로에 크뤼쇼데(Chloe Cruchaudet) - 여장 남자와 살인자



부제는 '살기위해 여장을 선택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평범하게 살아오던  한 남자가 군인으로 징집된다. 전쟁에서 몇 차례 참담한 살육을 경험하며 전투에 나가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절단하는 자해를 한다. 그러나 그조차 맘대로 되지 않자 탈영하게 된다.

이후 살아남기 위해 종전이 될 때까지 여장을 하며 살아간다. 여자가 된 그의 인생. 그리고 그의 아내. 소소한 행복에 즐거워하며 살아가던 소시민들의 인생을 전쟁은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앙굴렘 국제 만화제 수상작이며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알프레드(Alfred) - 코메 프리마 : 예전처럼



이탈리아 칸초네 코메 프리마(Come prima)는 '예전처럼'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면서 주인공이 염원하는 바를 시사한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솔리니 치하의 이탈리아. 작은 어촌이 지겨웠던 파비오는 모험을 찾아 고향을 떠난다.

중년이 되어 실패한 권투선수의 비루한 일상을 드문드문 살아내고 있는데, 어느날 아버지의 유골과 함께 동생이 찾아오고, 우여곡절 끝에 두 형제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예전처럼'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책을 보는 내내 '테일러 쉐리던' 각본의 '로스트 인 더스트'가 연상되었다.

어느 쪽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분위기가 꽤 비슷하다. 2014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 - 제 1차 세계대전



프랑스 국민 만화가 칭호에 빛나는 '자크 타르디'와 역사학자 '장 피에르 베르네' 공동 집필.

스토리는 재미를 위한 픽션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철저한 고증에 바탕했다. 1914년 부터 시작된 1차 세계대전이 연대기적으로 펼쳐진다. 거대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국가와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몰락하고 피폐해져 가는지 스펙타클한 스토리로 휘몰아치듯 이끌고 간다.

인간의 숭고함을 말살하고 영혼마저 철저히 파괴시키는 전쟁의 참혹함. 몸과 마음이 불구가 되었으나 끝내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기억은 인생은 지배한다. 이 전쟁에서 승자는 누구인가? 살아남은 자? 죽음으로 기억에서 해방된 자?


■ 쟝 쟈크 샹페(Jean Jacques Sempe) - 사치와 평온과 쾌락



어린시절 쟝 쟈크 샹페와 르네 고시니가 함께 만든 '꼬마 니콜라'를 만난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변변한 놀잇감이 없던 시절에 엄마 손을 이끌고 서점에서 직접 구입한 '꼬마 니콜라' 세 권은 귀한 보물이었다.

아직도 표지의 질감과 디자인, 책의 내용이 생생히 펼쳐질만큼 읽고 또 읽었던 책이다. 그만의 전매특허인 데생은 평생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유니크함을 선사한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은 보들레르의 시에서 따온 글귀로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위의 책 외에도 '속 깊은 이성 친구, 뉴욕 스케치, 얼굴 빨개지는 아이, 파리 아름다운 날들'은 허를 찌르는 풍자와 해학의 미가 넘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작은 행복들을 끊임없이 노래한다. Seize the day 놓치지 않을 것, 최대한 누릴 것!


다니구치 지로(谷口ジロ) - 아버지



다니구치 지로는 현실에 바탕하여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스토리텔링의 대가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감정이 이입해 더러 눈물이 맺히기도 하는데. 리얼리즘의 대가답게 그가 그려내는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듯 하다. 시대가 달라져도 정서는 쉬이 변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의 삶도 스스로에게 하찮은 인생은 없으며 사랑이 깊은 사연일수록 페이소스는 짙어진다. '아버지'는 1950년대 일본 돗토리현에서 일어난 대화재를 큰줄기로 평범한 집안에서 일어난 가정의 붕괴와 그에 따라 변해가는 한가족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열네 살'도 함께 추천한다. 두 작품 모두 앙굴렘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잔잔하고도 깊은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대표작은 '고독한 미식가'라는 생각이다.


■ 피에르 타랑자노(Pierre Taranzano) - 타나토노트



한때 우리나라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스'가 그래픽노블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타나토노스는 Thanatos(죽음)과 Nautes(항해자)를 합친 말이며, 저승으로 가는 기계를 이용해 사후세계를 탐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SF노블이다.

어린시절의 두 친구가 과학자와 의사가 되어 조우했다. 그들이 저승 탐사대를 꾸려 전인미답의 세계인 지옥으로 여행을 떠난다. 잠시 숨이 끊어진 코마 상태가 되어 제 7천계에 이르는 저승세계를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체험하는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간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미치도록 궁금해진다. 죽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그 세계. 우리들은 이 세계에서 죽으면 천국으로 가는 것일까?


김수박 - 아재라서



시사고발 옴니버스 만화 '내가 살던 용산'을 읽다가 김수박이란 작가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커다란 라디오를 들고 있는 표지가 궁금하여 '아재라서'를 읽어보게 되었다.

지방의 어느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무력으로 반장이 되어 군림하는 인물을 통해 권력의 속성과 비열함, 절대권력에 무기력한 학우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아왔던 한국사회의 단면을 비유한다.

불온한 이익을 취하고 권력에 빌붙는 이들, 방관자들, 아슬하게 이어지는 작은 평화, 그러나 끝까지 맞섰던 영도라는 인물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나아가는 '희망'을 보여준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의 엄석태도 오버랩 되고. 교실에 빗댄 우리사회의 축소판으로 고발하는 에피소드들은 현실이나 다름없어 실소와 함께 부끄러움을 자아낸다. 현재 김수박 씨는 한겨레 신문에 '민들레'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제프 르미어(Jeff Lemire) - 에식스 카운티



에식스 카운티는 캐나다의 어느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 곳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담았다. 그림은 블랙&화이트의 구성으로 무척이나 건조하다. 바싹 마른 지면을 보고 있노라면 목이 말라온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순무처럼 길고 허여멀건한 얼굴에  건포도 같은 두 눈을 붙이고 있다. 그러나 그 건조한 인물들이 대사를 하고 살아 움직일때 가슴이 쓰릴만큼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장식을 날려버리고 최소한의 배치만으로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든다.

내용은 3부작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모두가 연결되는 스토리이다. 인생이라는 수수께끼. 가슴이 아려오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윤혜영 선임기자 geo05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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