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인간학]아부에 관해(3)코미를 해고하고 폼페이오를 중용한 트럼프의 딜레마 해법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8-08-2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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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왼쪽) 미국 대통령에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어떤 존재인가? 미국언론들은'아부 천사'라고 말한다.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진실’을 논하면 해고하고 ‘아부’하면 중용?

현존하는 정치권력자 중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아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류로 꼽힌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자를 향해서는 가차 없이 ‘해고’를 외치고, 칭송하는 사람은 중용한다.


예컨대 제임스 코미 전 미 연방수사국(FBI)국장은 러시아의 대선개입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를 구출하는 대신에 진실을 논했다. 러시아 개입을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트럼프를 진실의 벼랑 아래로 밀어버리려고 했다. 코미는 지난 5월 해직됐다. 

회고록 출간을 앞둔 코미 국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에도 방송에 출연해 트럼프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코미는 트럼프를 ‘이기적인 깡패 두목’,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트럼프는 여성들을 마치 고깃덩어리처럼 취급하고, 크고 작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런 식이면 코미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트럼프가 곁에 두고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럼프를 진실의 벼랑 아래로 밀던 코미는 짐 싸고 ‘아부 천사’ 폼페이오는 중용돼

반면에 트럼프 정권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나친 ‘아부’로 거듭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지난 26일 “폼페이오가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의 탁월한 전략이 작동하는 것처럼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면서 “상관에 아부하기 위한 좋은 얘기를 자제하는 것이 폼페이오 장관에 좋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폼페이오가 진실을 가리는 아부의 달인이라는 게 WP의 비판 포인트였다. 폼페이오는 북미정상회담을 마치고 트럼프가 합의문에 서명을 할 때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있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폼페이오는 트럼프의 72번째 생일인 지난 14일에 다시 실력 발휘를 했다. 자신의 트위터에 “조국을 대표해 당신의 리더십 아래 복무한다는 사실에 황송하다(humbled)"라고 적었다.

트럼프가 지금도 코미를 ‘범죄자’라고 부르고 폼페이오를 끼고 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트럼프가 아부에 중독된 권력의 화신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은 트럼프와 비슷하다.

버스 운전사도 난폭운전으로, 그것도 권력이라고 남용하곤 한다. 비판에 상처받고 칭송에 해죽거린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트럼프 스타일은 인간 본성, 문제는 아부천사가 무능할 경우 발생하는 ‘아부의 딜레마’

문제는 ‘아부의 딜레마’에 있다. 만약에 진실을 따졌던 코미가 정성을 다해 아부했던 폼페이오보다 능력이 탁월하다면, 트럼프와 미국의 불행이 된다.

무능한 아부 천사를 중용할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게 권력자 입장에서 아부의 딜레마이다.

거꾸로 폼페이오가 더 뛰어난 인간이거나, 양자가 비슷한 수준이라면 트럼프는 행운아이다.

이처럼 권력자가 아부의 딜레마에서 탈출해 행운아가 되도록 해주는 해법은 유일하다. 아부에 대한 ‘교육 혁명’이다.  

아부 능력이 교육을 통해 긍정적 가치로 자리매김되고, 그 공급이 확대될 경우, 사회는 세 가지 차원에서 큰 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교육혁명으로 아부의 공급이 증가하면 아부의 영향력 감소해 딜레마 해결

첫째, 도덕적 혼란을 해소하게 된다. 교육이 가르친 정직과 성실에 위배되는 아부라는 능력이 인생의 중요한 고비에서 승부수로 작용할 때 열패감과 함께 도덕적 상실감을 겪던 다수 인간은 아부의 적극적 동참자로서 아부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아부의 공급 증가는 아부의 영향력 감소라는 역설적이고도 결정적인 국면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교육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아부의 능력을 지닌 자들이 성공을 거듭할 경우 그 사회 전체가 무의식적으로 도덕에 대한 저항 내지는 조롱 심리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일종의 집단 심리로서의 도덕 조롱 심리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비롯되고, 그러한 괴리를 확대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작동한다. 아부에 대한 새로운 교육학은 바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것이다.


아부가 성공의 변수되면 사회는 좌절, 아부공급이 늘면 실력이 성공의 핵심 변수

둘째, 모든 사회조직의 발전 또한 예상된다. 조직의 상층부를 실력이 약간 부족하지만 아부능력이 뛰어난 자들이 장악하는 집단의 중층과 하층부는 일종의 자조적 정서에 빠지게 된다.

교육이 가르친 실력과 정직을 체화한 인간들이 패배하고 부족하지만 아부능력이 우월한 소수가 조직의 상단을 점령하는 모습은 조직을 ‘생계를 위한 감옥’으로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 인간이 아부능력을 갖춤으로써 아부가 더 이상 중대한 경쟁력이 아니라면, 실력과 정직이 더 중요한 경쟁력으로 승진할 것이다. 실력과 정직이 조직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가치가 된다면 그 조직은 구성원들 입장에서 자아실현의 무대로 인식될 수 있다.


아부가 체질화된 사회는 아래에서 위로의 공감능력 발달해

셋째, 아부에 대한 교육혁명은 개인의 공감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아부를 선호하는 정점에 선 자들의 취향이 결국은 자존감이라는 인간 본성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부에 대한 긍정적 교육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 즉 정점에 선 자 또는 상사들도 자존감 충족을 열망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아부하는 게 그리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부행위는 위에서 아래로의 공감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공감을 실현하는 길인 것이다.

정점에 선 자들이 지닌 이율배반적인 욕구, 즉 지위 불안감과 자기충족 욕구를 이해하는 것도 사회적 공감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이처럼 공감 능력을 확장한 인간은 자신과 다른 인간에 대해 인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저울질하면서 이해하고 상상함으로써 공감의 폭을 넓히고 수준을 깊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감 능력을 근육에 비유한다면 ‘공감 근육’의 발달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그렇다면  아부가 체질화된 사회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닌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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