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인간학]아부에 관해(2) 강신욱은 통계의 ‘아부 효과’ 입증해 황수경과 차별화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8-08-28 12:09   (기사수정: 2018-08-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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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중앙집권제인 한국의 대통령제 하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그리고 국무위원들은 대통령의 마음인 ‘천기(天氣)’를 헤아리는 능력을 요구받는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아부의 사회적 문제는 수요 공급의 불일치에서 싹터

언제나 문제는 모순이다. 권력자가 ‘아부’를 갈망하는 데 비해 다수 인간은 아부하는 행위를 경멸하는 모순에서 비극이 생긴다.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하는 것이다.

특히 권력과 금력 모두 또는 어느 한 쪽을 갖게 된 인간은 모순적 삶의 순간에 서게 된다. 정점에서 내려오게 될지 모른다는 ‘지위 불안감’과 정점을 즐기려는 ‘자기실현 욕망’이다. 이러한 불안감과 욕망을 일거에 해결해주는 것이 아부를 받는 구조이다.

따라서 아부를 받는 구조를 견고하게 해주는 소수의 인간을 선호하게 된다. 아부라는 정신적, 물질적 재화가 경쟁적으로 공급된다면 권력은 그중에서 최선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아부가 거의 독점 공급된다면 최악이라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다른 대안은 없다.


문 대통령의 통계청장 경질은 ‘직언’에 귀닫고 ‘아부’를 선택한 형국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통계청장을 전격 경질한 것은 단적인 사례이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을 핵심으로 한 소득주도성장은 최고 정치권력인 문 대통령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등 보수 정권과의 진정으로 차별화된 정책이기 때문이다.

황수경 전 통계청장은 그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내는 통계를 생산해냈다. 지난 5월말에는 소득 하위계층인 1,2분위의 실질소득이 하락했다는 내용의 1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발표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이 조사 등을 근거로 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론’을 제기했다가 문 대통령에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황 청장과 김 부총리는 권력자에게 ‘직언’을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학교교육에서 배운대로 행한 셈이다.

반면에 강신욱 신임통계청장은 5월말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측에 “통계청의 표본 추출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다 한 술 더 떠서 ‘분식 통계’까지 제공해 문 대통령을 기쁘게 했다. 실업자를 제외한 취업자만 기준으로 할 경우 하위 계층의 실질소득이 증가했다는 게 그 골자였다. 국민 소득을 계산할 때 실업자를 제외해 실질소득을 높였다면 그건 ‘분식 통계’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강신욱 연구위원의 자료를 근거로 “최저임금 정책은 긍정적 효과가 90%이다”라고 호언해 다수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랑했던 대통령이 직언에 눈귀를 닫고 아부에 도취하는 권력의 전형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통계청이 발표한 2분기 가계소득동향 조사는 문 대통령을 ‘분노’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하위 60%, 즉 1.2.3분위 계층의 실질 소득이 감소했다는 게 요지였다. 1분기에 소득이 증가했던 3분위까지로 하락했다는 점에서 악화된 수치였다.


소득주도성장 비판근거 생산한 황수경 대신 외곽에서 지원해준 강신욱 기용돼

결국 인사권자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황 청장을 교체하고 후임으로 든든한 지원군인 강신욱 청장을 기용한 것이다. 강 청장은 27일 국회답변에서 “통계청의 1분기 발표 때 조사표본의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표본이 잘못됐다기보다, 표본은 표집 기술상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고 가중치를 부여해 전국적인 대표성을 갖게 하는 여러 방법이 있기 때문에 그 방법에 대해 좀 더 면밀히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명쾌해야 할 통계를 다루는 사람으로서는 부적절한 난해한 어법으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는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지난 5월에 자신이 통계청의 표본 추출 방식의 문제를 제기했지만 사실은 문제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둘째, 가중치에 변화를 줌으로서 기존 통계청과는 다른 하위계층의 실질소득 추이를 작성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점에 선 인간은 대부분 아부라는 정신적인 가치를 갈망하는 것인가. 인간 본연의 자존감의 결과인가, 아니면 정점에 선 인간의 모순성 즉 지위 불안감과 자기실현 욕망이 빚어내는 이중주인가?  본성에 해당되는 자존감만으로 정상에 선 인간들이 매달리는 아부받는 구조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본성적 자존감은 자신의 자존감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자존감도 이해하기 마련이다.

아부받는 사람도 아부하는 사람의 자존감이 심하게 상처받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권력이 지닌 ‘지위 불안감’과 ‘자기실현 욕망’이 아부받는 구조를 충동질

따라서 정점에 선 인간들이 추구하는 아부받는 구조는 인간의 본성보다는 ‘사회적 요인’에 의해 강화되는 측면이 크다. 즉 자신이 차지한 위치에서 비롯되는 지위불안감과 자기실현 욕망이 더 강하게 아부받는 구조를 요구하도록 충동질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황수경의 통계청이 만들어낸 수치도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의 지위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에 강신욱의 자료와 논리는 권력의 자기실현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다수 인간이 아부하는 구조를 거부하는 심리는 본성적인 측면이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존감이라는 본성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교육이 아부를 부정적 가치로 획일화해서 평가하지 않는다면 다수 인간의 아부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도 상당한 수준으로 약화될 것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생각을 바꿔보자. 아부를 긍정적 가치로 교육한다면 인간의 자존감은 아부를 어떻게 판단할까? 교육은 인간의 자존감을 충족시키는 방향과 가치를 설정하는 기능을 한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생물학적 욕망은 교육이 개입할 공간이 없지만 그 이상의 욕구의 방향은 교육이 결정한다. 칼자루를 쥔 교육이 아부를 긍정한다면 다수 인간이 아부하는 구조를 만끽할 수도 있다.


아부를 긍정의 가치로 인정하는 교육 혁명이 필요

그렇다면 교육이 아부를 긍정의 가치로 인정하는 혁명은 필요하다. 다수 인간이 아부하는 구조를 수용한다면 기회균등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아부하는 능력과 관련해서는 불평등 상황이다. 소수의 인간은 아부하는 구조를 받아들인다. 다수 인간은 아부하는 자를 손가락질한다.

따라서 손가락질 받는 자는 소수이고, 손가락질하는 자는 다수이다. 소수는 자신이 욕망했던 것을 얻고, 다수는 욕망을 포기하게 된다. 소수는 아부하는 구조에 오기 전까지는 치열한 경쟁을 겪으면서 열패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아부하는 구조에 도달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아부하는 능력만으로도 그동안 힘겹게 견뎌왔던 경쟁자들을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정점에 선 자들은 중간 지점에 있던 인간들과는 달리 아부받는 구조를 만들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즉 아부가 부정적 가치로 자리매김 된 덕분에 무능하지만 아부하는 능력을 지닌 자들이 사회적 경쟁의 최종 국면에서 승자가 되는 ‘아부의 역설’이 발생한다.


교육이 아부를 부정할 때 ‘아부의 역설’ 발생

아부의 공급이 희소하면 권력은 ‘차선’아닌 '최악' 수용해야하는 위험에 노출돼 

황수경과 강신욱의 사례에서도 아부의 역설이 발견된다. 황수경은 통계청장으로서의 전문성을 가진 자이다. 국가통계 작성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해왔다. 한국노동연구원 데이터센터 소장, 동향분석실장 등을 지냈다. 통계를 주무르던 자리들이다.

이에 비해 강신욱 신임청장은 소득분배 전문가로 평가되지만, 통계청과 직무관련성이 있는 직책을 역임한 적이 없다. 경력 상으로 볼 때, 통계 전문가인 황수경이 밀려나고 비전문가인 강신욱이 승자가 되는 역설적 결과가 빚어진 셈이다. 

그 결과는 부정적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리는 ‘천기(天氣) 통계’ 작성에는 황수경보다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서민의 아픔을 은폐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해법은 있다. 교육이 아부를 긍정적 가치로 교육한다면 다수의 인간들이 아부하는 구조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소수의 아부 능력을 타고난 자들이 승리의 전당에 무혈입성하는 상황은 종식될 것이다.

그것은 기회균등의 실현이라는 도덕적 명분뿐만 아니라 사회적 발전이라는 실익까지 증진시키게 된다. 실력보다 아부능력이 뛰어난 자들이 주로 점령했던 각 조직의 상층부를 실력과 아부 능력을 겸비한 자들이 비율이 증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정리하면, 모든 조직의 최상층부 진입경쟁에서 현재까지는 실력과 아부 능력중 아부가 더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해왔다. 정점에 선 자의 입장에서 보면 실력이라는 가치는 공급자가 많다. 그러나 아부라는 가치는 공급자가 적다.

실력을 가진 사람은 통상 자존감이 강하고 교육의 영향을 더 강력하게 받기 때문에 아부하는 구조에 대한 저항감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점에 선 자들은 희소가치의 공급자인 아부하는 소수를 선택하게 된다.

실력 면에서 약간 뒤지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실력 면에서 상당한 부족함이 있다해도 지위 불안감과 자기 충족 욕망을 해결해주는 아부하는 사람을 주저없이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권력자들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아부라는 정신적 재화의 공급이 증가한다면 아부를 선택적으로 구매할 것이다. 지금처럼 열악한 품질의 아부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실력이 약간 부족해도 아부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도태될 것이다. 실력이 더 출중하면서도 아부능력을 겸비한 사람을 기용할 것이다.

태생적으로 그리고 오랜 사회적 경험을 통해 날카로운 선구안을 키워낸 정점에 선 자들이 같은 값이면 높은 품질의 아부를 구매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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