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인간학]아부에 관해(1) SK총수 최태원과는 다른 현실의 권력자들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8-08-22 12:32   (기사수정: 2018-08-22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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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의 권력자들은 '아부'를 받는 순간 삶의 정점을 느끼지만 인간은 '아부'를 경멸하도록 교육받는다. <사진 출처=Pixabay>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모든 문명은 ‘아부’를 경멸하고 배척하도록 교육

‘의전’을 멀리하는 최태원 회장, 교육의 가치를 실천하는 드문 사례

아부와 교육학은 역설적 명제이다. 어떤 문명에서도 아부의 방법을 교육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시절부터 아부는 정의롭지 못하다고 가르친다. 역사 속에서 아부는 간신의 전형적 특징으로 자리매김된다.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 공통점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아부는 무능한 인간이 출세를 하는 방편으로 매도된다.

이 점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잘 교육받은 인물로 보인다. 최 회장은 해외출장 갈 때, 여느 대기업 총수와는 달리 ‘의전’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항이나 거리에서 수행자와 편하게 대화하면서 걷는 스타일이라던가. 처음 수행하는 임직원은 당혹감을 느낄 정도로 소탈한 태도라고 한다. 

이처럼 의전을 따지지 않는 인간 심리의 기저에는 ‘아부’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최 회장과 같은 경제 권력자는 아부에 익숙하거나 즐기는 성향을 갖기 마련이다. 권력을 갖고도 아부를 멀리한다면 어린 시절 체화된 교육의 가치를 잘 실천하는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현실 속 대부분 권력자들, 아부를 즐기는 편

다수 인간, ‘아부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자존감을 상실

그러나 대부분 현실 속 권력자들은 그렇지 않다. 역사를 지배했던 자, 현재의 삶에서 승리하는 자들은 아부를 삶의 동반자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지점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권력자는 아부를 즐기지만 다수의 인간은 아부를 경멸한다. 인간 본성의 바다인 자존감은 아부하는 행위에 대해 배척하고 침을 뱉는다. 타인의 아부행위를 자신의 자존감에 투영해 볼 때, 그 타인에 대한 경멸감을 참을 수 없게 된다.

물론 다수의 인간은 아부를 강요받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생존이나 승진을 위해서는 자존심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에 몰리게 된다. 이 상황을 ‘아부를 해야 하는 구조’라고 규정해보자. 다수 인간은 이처럼 ‘아부해야 하는 구조’가 자존감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는 국면이라고 이해한다.

자신이 아부하는 상황을 비극적 구조로 여긴다. 자신이 아부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충격적인 자존감의 상실을 미리 체험해버린다. 그 결과 아부를 통해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위와 재화를 포기한다. 그리고 합리화한다. 자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런 인간이란 아부하는 인간이다.

소수의 인간만이 ‘아부해야 하는 구조’에서 놀라운 능동성 발휘

반면에 소수의 인간만이 ‘아부해야 하는 구조’에서 놀라운 능동성을 발휘한다. 일말의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의 조롱과 수근거림은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단호하게 아부의 말과 행동을 실행해나간다.

아부하는 구조 속에서 다수의 인간이 굴욕감이나 비애 그리고 심지어는 절망감을 느끼는 데 비해 소수의 인간은 기회를 발견한다. 타인이 절망이라고 느끼는 상황에서 위기를 포착하는 것이다. 다수의 인간과 힘겹게 실력경쟁을 펼쳐왔던 소수의 아부형 인간들은 손쉽게 최종 경쟁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이런 소수 인간의 특수성은 무엇일까? 자존감이라는 인간의 보편성과는 다른 무엇이 소수에게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일단 접어두자. 좀 더 논의를 진전시킨 후 이 문제를 자연스럽게 설명하기로 하자. 다수 인간이 아부구조를 거부하는 이유를 분석해보는 것이 아부에 대한 교육혁명의 필요성을 제기함에 있어 선결과제라고 볼 수 있다.

다수 인간, ‘교육의 가치’ 지켜내지만 권력자에게 자존감의 절정을 제공하지 못해


다수 인간이 아부를 혐오하게 된 것은 본성적 측면뿐만 아니라 교육의 힘도 크다. 기성교육은 정직, 성실, 실력 등을 핵심가치로 삼고 있다. 이 핵심가치에 따르면 아부는 자신과 상대방을 속이는 부정직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실력이 아닌 편법으로 성공하려는 잘못된 기술이다. 아부를 거부하고 실익을 포기하는 것이 정직과 성실이라는 교육적 가치에 부합된다.

따라서 다수 인간은 본성이 부르짖는 자존감을 교육적 가치를 명분으로 삼아 지켜내는 심리적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비극은 그 반대 지점에서 싹튼다. 평범한 인간의 자존감은 아부를 즐긴다. 아니 즐긴다는 표현은 아부를 받는 순간이나 아부를 받는 구조가 삶에서 차지하는 철학적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다. 인간은 아부를 받음으로써 자존감의 절정을 맛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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