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이재용의 ‘삼성 투자’ 단독 발표는 비정상의 ‘정상화’
권하영 기자 | 기사작성 : 2018-08-0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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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권하영 기자)
 
기재부가 현대차·SK·LG·신세계그룹 등의 투자계획 발표했던 관행은 전형적인 ‘탐천지공(貪天之功)’
 
‘구걸논란’으로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삼성그룹 투자 및 일자리 계획 발표는 무산
 
“김 빠졌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관치 경제’에 중독된 판단 오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투자및 고용계획 단독 발표는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
 
지난 6일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은 여러모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와 재계 1위 대기업 총수가 만나는 첫 회동이었다. 무엇보다 이 부회장이 김 부총리의 방문에 맞춰 내놓을 삼성의 대규모 투자·고용 청사진에 대한 관심도 집중됐다.
 
하지만 이날 삼성은 결국 투자 계획 발표를 잠정 연기했다. 김 부총리가 삼성에 투자를 과하게 강요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면서다. 특히 “정부가 대기업에 투자를 구걸해선 안 된다”는 청와대발 발언이 모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것이 결정적이었다. 청와대는 뒤늦게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두 사람의 만남은 ‘구걸 회담’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삼성의 투자 계획 발표 연기를 두고 대다수 언론은 “김이 빠졌다”라거나 “찜찜하게 끝났다”라고 평가했다. 물론, 삼성이 준비하고 있는 투자 규모가 100조 원대에 이른다는 관측이 회동 직전까지 쏟아지며 재계 안팎의 관심이 치솟던 상황이었으니 그 아쉬움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언론들의 부정적 반응은 ‘관치 경제’ 중독에서 나온 판단 오류다. 이번 사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봐야 한다. 기업의 투자 및 고용창출 계획은 기업 혼자서 발표하면 된다. 정부가 거기에 끼어들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는 6일 발표를 연기하는 대신, 이르면 금주 내로 투자 계획을 ‘직접’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앞서 김 부총리가 현대차그룹, SK그룹, LG그룹, 신세계그룹 등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기획재정부가 보도자료 형식을 통해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과 대조적이다.
 
생각해 보면 대기업의 투자 계획 발표에 기재부가 나서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기업의 투자 계획은 정부의 투자 장려와 별개로 회사가 시장 상황과 필요를 따져 결정하는 일이다. 애초에 김 부총리가 직접 언급했듯이 투자든 고용이든 그 주체는 기업이다. 정부가 배 놔라 감 놔라 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고 정부가 기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현장 소통과 규제 개혁에 나섰다고 하면 또 모를까. 하지만 정권 출범 이래 소득주도성장만을 외쳐 온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 노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도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그런데도 대기업이 중장기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를 정부가 들어앉아 차지한 것은 그야말로 하는 일 없이 남의 공을 가로채는 ‘탐천지공(貪天之功)’격일 수밖에.
 
이번 투자 구걸 논란도 김 부총리에겐 ‘자승자박’이다. 애당초 이 논란은 그의 지난달 26일 발언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당시 김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전자 사업장 방문 예정 사실을 밝힌 후, “모 대기업이 곧 15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에 15조 원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마치 정부가 물심양면으로 기업의 투자 확대를 끌어내고 있다는 ‘생색’을 내기에 딱 좋은 타이밍인 데다, ‘다음 차례’인 삼성의 차기 투자 규모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물론 SK하이닉스의 신공장 투자도 실상은 최태원 회장이 이미 몇 년 전에 결정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지금껏 김 부총리가 만난 현대차, LG, SK, 신세계 등 대기업들의 신규투자 계획을 보면 향후 몇 년간 그 규모가 130조 원을 넘는다. 요즘 같은 경기불황과 저성장 시대에 기업이 투자를 늘리는 것은 힘든 결단이다. 물론 여기엔 규제 혁파 등 정부가 해야 할 역할도 있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가 동등한 협력 주체로 인정받아야지, 정부만 공을 독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행히도 삼성은 회사의 투자 계획을 ‘직접’ 발표할 수 있게 된 행운을 얻었다. 그러고 보면 ‘투자 구걸’로까지 번진 이번 논란이 다소 과한 점은 있더라도, 기업이 제 공을 되찾은 계기는 됐다는 점에선 충분히 긍정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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