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 ①경력: ‘패스트 세컨드’ 전략으로 퍼스트무버 ‘삼양’을 누르고 라면업계 평정
박혜원 기자 | 기사작성 : 2018-08-01 15:21   (기사수정: 2018-08-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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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민정진/ⓒ뉴스투데이]

농심그룹 신춘호 회장, 맏형인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일본 롯데에서 출발

라면사업 반대하는 신격호 명예회장으로부터 독립해 ‘농심’ 창업

1960년대 초반 박정희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을 ‘기회’로 포착

농심, 너구리·육개장 사발면·짜파게티·신라면 등 다양한 제품 개발 통해 시장 주도

20년 만에 시장 지배자 삼양 등 제치고 1위 차지, 성공한 ‘패스트 세컨드’ 전략의 대명사
   
(뉴스투데이=박혜원 기자)
 
신춘호 회장은 한국 라면시장의 점유율 1위인 ‘신라면’을 비롯한 식품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농심그룹의 수장이다.
 
농심그룹의 역사는 독특하게도 ‘한 형제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1957년에 동아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신춘호 회장은 1958년부터 맏형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따라 롯데에 입사하게 되었다. 일본 롯데 부사장으로 시작한 그는 1962년부터는 일본 롯데 이사를 맡았다.
 
형제간에 갈등이 일어난 것은 이때다. 당시 신춘호 회장은 일본 현지에서 눈여겨보았던 ‘라면’ 사업에 뜻을 나타냈으나 신격호 총괄회장이 이를 반대했다. 당시 한국에는 삼양식품에서 생산하는 ‘삼양라면’이 있기는 했으나, 여전히 라면을 비롯한 간편식 시장 자체가 협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1960년대에 박정희 정부는 서울을 중심으로 대규모 신시가지를 조성하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등의 경제개발 정책과 함께 쌀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혼식(쌀 이외의 여러 잡곡을 섞어먹는 것)과 분식(밀가루 음식) 장려 운동을 펼쳤다. 이에 신 회장은 라면 사업이 블루 오션이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결국 신 회장은 뜻을 관철하기 위해 1963년에 형과의 사업 관계를 정리하고 1965년에 ‘롯데공업’을 설립한다. 그러나 신격호 총괄회장이 동생에게 ‘롯데’라는 브랜드를 쓰지 못하도록 하자, 신 회장은 1978년에 사명을 ‘농부의 마음’이라는 뜻의 ‘농심’으로 바꿨다.
 
당시 라면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기업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선도자)’인 삼양이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일종의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 시장을 확장해 퍼스트 무버를 제치고 1등이 되는 후발주자)' 전략으로 삼양라면과의 전쟁에서 승자가 된다. 농심 그룹은 신제품 개발에 몰두함으로써 비시장 지배자였지만 비교적 품목이 단순했던 삼양을 누르게 된다.

농심그룹은 1982년에 ‘너구리’와 ‘육개장사발면’을, 1983년에 ‘안성탕면’을, 1984년에 ‘짜파게티’를 잇따라 선보이면서 1985년에 후발주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때 개발된 제품들은 모두 현재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뒤이어 1986년에 개발되어 농심그룹의 최대 히트상품이 된 ‘신라면’은 2015년에 누적매출 10조 원을 넘어섰으며, 현재 세계 100개국에서 판매 중이다.
 
이후 1992년부터 신 회장은 본격적으로 농심그룹의 회장직을 맡게 됐으며, 같은 해에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비상임부회장을, 1994년에는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박혜원 기자 won0154@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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