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작 프리뷰 - 볼까? 말까?] ‘디트로이트’ (2017 / 미국 / 캐서린 비글로우)
황숙희 기자 | 기사작성 : 2018-06-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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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트로이트' 포스터 ⓒ안나푸르나픽처스


흑인들의 저항과 백인의 진압… 미국의 '민낯' 보여주는 영화 '디트로이트'

지금도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 이야기

(뉴스투데이=클라렌스 영화칼럼니스트)


▲ 영화 '디트로이트' 스틸컷 ⓒ안나푸르나픽처스


>>> 시놉시스

1967년 디트로이트. (백인 위주) 경찰의 무분별한 탄압에 분노한 흑인들이 저항을 시작하자 미국에서 5번째로 큰 도시가 걷잡을 수 없는 무법지대로 변한다. 아프리카계 흑인 구역에서 일어난 폭동은 건물을 태우고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과 소방관들을 향한 총격과 폭력 행위로 번져가고, 이에 경찰을 보호하고 소요를 진압하기 위한 군 병력까지 투입되기에 이른다.

전쟁 같은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알제 모텔. 이곳엔 직업을 찾으러 온 베트남 참전 용사(흑인)와 휴가를 즐기러 여행 온 여성들(백인), 데뷔 무대가 폭동으로 취소된 가수와 매니저(흑인) 등이 한 여름의 망중한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모형 총으로 시작된 위험한 장난은 잔뜩 날카로워진 경찰과 군인들을 자극하고 곧 이어질 끔찍한 하룻밤의 단초를 제공한다.


▲ 영화 '디트로이트' 스틸컷 ⓒ안나푸르나픽처스


>>>확고한 편협함의 연출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수사업의 전지기지 역할을 했던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등의 제조산업으로 많은 흑인 노동자들이 유입되어 있었고, 이미 1943년에도 도시 백인과 흑인 사이의 직업, 주택 경쟁으로 인한 인종 폭동을 경험한 도시였다. 50년대 들어 전국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인구 팽창에 따른 범죄와 적대적 인종 문제는 더욱 늘어난 상황. 백인들은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흑인들의 거주지는 슬럼화되며 여러 위험신호가 감지되는 건 필연적 결과였다.

영화는 수 십 명이 사망하고 막대한 재산 피해가 발생한 그 때 그 시절, 특정한 공간으로 찾아 들어간다. 장난감 총으로 촉발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광기 어린 백인 경찰과 힘 없이 당하는 흑인들(에 더한 젊은 백인 여성들)의 피 비린내 나는 하룻밤으로 귀결되지만, (영화 말미에 설명되듯이) 이 날의 비극은 완전히 명백한 사실관계가 밝혀진 사건은 아니다.

물론 제작진은 실제 목격자들의 증언, FBI의 자료, 매스컴의 보도와 사법처리결과 등을 토대로 디테일한 서사를 채워놓았다. 거기에 감독 특유의 힘이 넘치고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긴장의 연출력은 오래 전 실제 했던 시간과 공간 속에 우리를 밀어 넣고, 불안함이 넘치는 목격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2시간 20분이 넘는 러닝타임 중 1시간에 가깝게 연출된 모텔 복도의 심문 시퀀스는 그 긴 시간만큼 보기 힘들기도 하지만, 지루할 틈 없는 영화적 긴장에 감탄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영화 '디트로이트' 스틸컷 ⓒ안나푸르나픽처스


>>>볼까, 말까?

그런나 이 지점에서 생기는 하나의 의문. 모든 의혹이 풀리지 않은 실제 사건임에도 영화는 거의 일방적으로 백인 경찰들을 폭력에 기댄 인종 차별자로 그려내고, (적어도 이 모텔에 머물렀던) 흑인들은 난데없는 폭력에 희생당한 무고한 시민들로 등장시킨다. 그렇다면 이것은 면밀히 따져보지 않고, 사실 관계를 왜곡한 편협한 시선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쯤에서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의 직전 작품들을 떠올린다. <허트 로커>(2008)와 <제로 다크 서티>(2012). 전쟁의 참혹함 속 인물들의 민낯과 내면을 가장 밀접해 그려낸 작가 중의 한 사람. 그렇다면 그가 1967년 7월의 사건을 50년 후 미국의 시간에 다시 불러온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훈을 얻지 못한 역사는 반복되고, 그래서 가끔 위대한 예술가들은 있는 힘을 다해 간과했던 역사를 다시 소환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무엇을 보고 읽고 느끼고 배울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몫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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