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성폭력 실태] 정규직 남성 PD가 비정규직 젊은 여성 작가 착취하는 ‘비열한’ 구조
이재영 기자 | 기사작성 : 2018-04-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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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만재(왼쪽)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이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투데이

방송계갑질 119과 스태프노조의 설문조사 결과, 조사대상의 90%가 ‘성폭력 피해’ 응답

피해자의 80%는 비정규직인 작가, 가해자는 공중파 방송사 및 외주제작사 임직원이 대부분

회식 장소, 촬영장 등 일상 공간에서 ‘죄의식’ 없이 ‘성폭력’ 자행돼

‘수직적 권력관계’, ‘성폭력 당연시하는 방송계 문화’ 등이 양대 주범으로 꼽혀

인사권 쥔 권력과 잘못된 방송계 문화가 피해자 80%를 ‘침묵’시켜

(뉴스투데이=이재영 기자)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한 50대 남성 공중파 제작PD가 20대 후반의 여성 서브작가의 가슴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움켜쥐었다. 서브작가는 그날 이후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무 조치도, 징계도 없었으며 그 자리에서 아무도 말린 사람이 없었다."

방송계 성폭력의 전형적인 사례는 이처럼 정규직인 중년의 남성 PD가 비정규직인 젊은 여성 작가를 대상으로 비상식적인 성추행과 성폭행을 시도하는 행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국 내에서 ‘권력자’인 중견 PD들이 가장 약한 고리인 여성 작가들을 제물로 삼아 일상적으로 잘못된 욕망을 충족시켜왔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즉 ‘비열함’이라는 단어로 방송계의 ‘성폭력 구조’는 요약될 수 있다. 

방송계갑질119과 스태프노조는 지난 2월14일부터 3월2일까지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해 이 같은 내용의 ‘방송계 성폭력 현황’을 18일 발표했다.

설문 응답자 223명(여성 93.7%, 남성 6.3%) 중 80.2%(178명)가 자신을 작가라고 밝혔다. 이밖에 연출 17.1%(38명), 후반작업 1.8%(4명), 미술 1명, 기자 1명등의 순이었다. 가해자의 94.9%는 남성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는 응답 비율은 89.7%(200명)에 달했다. 성폭력 유형(복수응답)은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가 70.4%(157건),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이 57.8%(129건)이 많았다. 방송계의 여성 근로자들은 대부분 일상생활 속에서 성적 모욕감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셈이다.

신체적 성폭력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신체 접촉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하도록 강요' 43.9%(98건),  '성적 관계를 요구하는 행위' 13.9%(31건), '성적 요구를 전제조건으로 고용, 평가 등의 이익을 제안하는 행위'는 4.5%(10건)로 집계됐다.

가해자는 주로 방송사 소속 임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 200명에 대한 성폭력 가해자 비율은 방송사 소속 임직원 47%(87건), 방송영상제작사 소속이거나 계약관계를 맺은 임직원 35.7%(66건), 부문별 용역업체 소속이거나 계약관계를 맺음 임직원 7.6%(14건)등의 순이었다. 연예인 등 출연자가 가해자인 경우는 5.4%(10건)에 그쳤다.

방송제작현장의 빈번한 성폭력 발생 원인(복수응답)에 대해 ‘성폭력 행위자와의 권력관계 때문’이라는 응답율이 무려 79.4%에 달했다.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응답도 78.5%에 달했다. 직장 내 생사여탈권을 쥔 중견 PD 및 상급자들이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되지 않은 여성 근로자들을 상대로 지속적으로 성적 착취를 가하는 ‘잘못된 문화’를 정당화시켜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성폭력을 은폐된 곳보다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온 것으로 파악됐다. 성폭력 장소와 관련해서 회식자리 44.7%(89명), 개방된 방송제작 현장이 24.1%(48명), 밀   폐된 방송제작 현장 8.5%(17명), 사적인 장소 6.5%(13명) 등이 뒤를 이었다.

조사에서 한 응답자는 “회식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선배 PD가 같은 방향이니까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고 했다”면서 “그 PD가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졌고 택시에서 내려 그 PD가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붙잡더니 골목길 같은 데에서 제 어깨, 허리를 만지고 심지어 뒤에서 가슴을 움켜쥐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술자리에서 부장님들 옆은 어린 막내 작가가 앉아야 한다고 옆에 앉히고, 회식 때 막내들한테 춤추게 했다”면서 “회식 때 메인 PD가 막내 작가한테 강제로 손잡고 뽀뽀하고 모텔 가자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2018 방송제작현장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한 참석자가 결과내용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투데이

그러나 피해자들은 수직적인 권력관계로 인해 성폭력을 당한 후에도 ‘묵인’하는 경향을 보였다. 성폭력을 당한 응답자 200명 중 대다수인 156명(80.4%)는 ‘참고 넘어갔다’고 말했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한 비율은 5.2%(10명)에 그쳤다.

성폭력을 당하고도 참고 넘어간 156명 중 57.7%(90명, 중복투표)은 ‘고용형태 등 신분상의 열악한 위치 때문에 문제제기 못했다’, ‘문제제기를 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서 참고 넘어갔다’ 55.8%(87명)등에 달했다. 권력관계의 벽, 성폭력을 당연시하는 방송계 문화 등이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해온 것이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마치 방송계 노동자들이 권리를 가진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것은 갑을관계를 포장하는 것"이라며 "바로 프리랜서라는 이름 때문에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고, 말 한마디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방송계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란 현실을 낳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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