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은 공간철학] 만물의 근원은 ‘공기(空氣)’이다 - 아낙시메네스
윤재은 칼럼리스트 | 기사작성 : 2018-04-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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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재은]

(뉴스투데이=윤재은 칼럼니스트)

질문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생명체의 원초적 욕구이다.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욕구는 다양하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생존에 대한 욕구를 시작으로 행복에 대한 욕구, 사랑에 대한 욕구, 소유에 대한 욕구 등 수많은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철학자의 욕구는 일반적 욕구와 다르다. 본질에 대한 물음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는 철학자의 욕구는 일생을 ‘질문’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질문은 일상적 질문이 아닌 ‘본질적 질문’이다.

본질에 대한 철학자들의 질문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의 기본적 욕구는 성취의 욕구지만, 철학자의 욕구는 반성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밀레토스 학파에 속한다. 그의 스승은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6년)이다. 그는 스승처럼 자연철학을 통해 만물의 근원을 밝히려는 철학자였다. 과학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의 사회에서 오직 의지와 직관을 통해 만물의 근원에 도달하려하는 그의 생각은 철학자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준다.

밀레토스 철학자 탈레스(Thales)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처럼 자연을 통해 세상의 근원을 증명하려는 아낙시메네스는 본질적 질문에 스스로 묻고, 답하였다. 세상을 이루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스승들의 질문과 같은 맥락이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구하려는 답은 달랐다. 그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만물의 근원은 물도 아니고, 아페이론(apeiron)도 아닌 ‘공기’였다. 그의 눈과 의식 속에서 공기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살아있게 하는 원인이며, 실체였다.

아낙시메네스는 세상을 이루는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공기가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고 보았다. 공기는 그 농도에 따라 흙, 물, 눈, 바람 등으로 변하고, 공기의 농도가 뜨거워지면 불과 천제로 변한다. 세계의 모든 변화는 이러한 공기의 농도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지구의 자연현상으로 지진, 태풍, 번개 등도 공기의 무한한 힘을 통해 발생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자연을 변화시키는 힘은 자연의 생성원인이며, 본질 그 자체이다.

아낙시메네스가 세상을 이루는 만물의 생명성에 대한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생각이 공기의 무한한 변화를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세계를 이루는 수많은 다양체의 근원을, 각각의 발생 원인을 통해 찾아내려는 것은 생성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낙시메네스는 세계의 다양한 대상을 하나의 본질로 묶어놓고 생성의 근원에 눈을 돌렸다. 그는 이러한 대상의 생성원인으로 ‘공기’만이 만물의 생성 원인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공기는 어떻게 보면 그의 스승인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무한자의 구체적 실체처럼 보인다. 무한자의 힘이란 만물의 생성 원인이며, 다양성을 포함하는 힘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힘은 여러 생명체에 힘을 부여하는 것인데, 그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은 추상적이어서 인간이 이해하기 쉬운 구체적이며 본질적인 논리가 필요했다. 이러한 의구심을 하나의 일원론적 사고를 통해 본질의 근원을 주장한 사람이 아낙시메네스이다.

아낙시메네스는 지속성의 무한한 힘은 운동에 의해 가능한데, 그가 생각하기에 공기는 세상을 움직이는 무한한 힘을 가진 존재였다. 탈레스가 주장하는 존재의 근원인 물도 공기의 운동성이 없으면 생성의 힘을 잃게 되고, 아낙시만드로스가 말하는 무한자의 끊임없는 힘은 공기에 의해서만 생명성이 연장된다고 보았다.

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공기의 실체적 현상은 아페이론보다는 구체적이고 인간으로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공기의 현상이 물질성의 생성 원인이라는 주장은 이후 많은 철학자들의 논쟁인 실체의 본질성에 커다란 의문을 제기하는 원인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 실체처럼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체해야하며, 그 실체는 물질적이어야 하는데, 공기는 실체하지만 물질적이지 않기 때문에 실체의 범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물질적 실체로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존재의 증명이 가능한 것인데, 아낙시메네스의 말처럼 현상으로서의 공기는 실체의 원인은 될 수 있지만,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원인으로만 남을 수 있다.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을 통하면 세상의 모든 물질은 비물질의 공기로부터 생성되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논리는 물질의 근원이 비물질에서 생성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결국 물질의 생성원인은 비물질적 실체에 의해서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논쟁에서 실체를 있게 한 원인으로 ‘신’의 인정은 모든 철학에서 중요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

아낙시메네스는 생성의 원인인 ‘공기’가 실체적 대상으로 변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어 공기의 '희박성'과 '농후성'의 대립적 개념을 사용한다. 여기서 대립적 개념이란 생성과 소멸의 과정으로서 지속가능한 연장성의 개념으로 후일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phenomenology)에서 등장하게 된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농후에 따라 질적 차이가 양적 차이를 결정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공기의 본질적 성질에서 가지고 있는 힘의 에너지는 팽창하면 농도가 희박해지는데, 희박은 뜨거운 온기를 불러들여 불이 되고, 수축하게 되면 바람을 만들어 세상을 흔들고, 수축이 지속되면 물, 땅, 암석의 형태로 변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공기의 에너지에 따라 세상의 만물들이 다양한 물질로 변하고 생성되며, 소멸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아낙시메네스의 공기는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철학을 통해 세상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주장이 된다. 그리고 그의 수축과 팽창을 통한 우주 만물의 동적 세계관은 후일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가 말한 동적 세계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그는 자신의 스승처럼 천문학에도 관심이 있어 지구가 평평한 모습으로 태양, 달, 별 등의 천체가 지구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행동과 시각적 현상으로 보면 지구는 평평한 대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식된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며 과학적 업적을 이룬 현대인의 입장에서도 지구는 대지처럼 평평한 구조로 인간을 받혀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이론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사실이 아닌 것처럼, 당시의 세계에서 바라본 우주의 본질에는 많은 오류와 한계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낙시메네스는 우주의 여러 행성들이 공기에 의해 떠받들린 상태라고 생각했다. 밤에 빛나는  달빛은 태양빛의 반사를 통해 지구로 돌아온 것으로 보았고, 지구는 원판 모양으로 밑은 공기에 의해 떠받들려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리는 지구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지구는 공기에 의해 떠 있는 배와 같다.

아낙시메네스가 말하는 만물의 순환은 수축과 팽창의 원리를 통해 설명하는데 뜨거움을 상징하는 불과 차가움을 상징하는 물은 지구와 지구 밖의 경계를 가르는 구멍에 의해 빠져나가고, 이렇게 빠져나간 에너지는 다시 공기로 되어 지구로 들어와 만물을 생성하고 소멸하는 연속적 순환구조의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공기의 순환을 통해 인간은 호흡하고, 숨 쉬며 생명을 연장하는데, 아낙시메네스는 세계의 전체를 공기의 순환을 통해 생명의 에너지로 채우면서 인간의 영혼을 강화한다고 보았다.

철학자의 일생에 있어 앎에 대한 욕구는 물고기가 먹이를 찾아 물속을 떠다니는 물질적 욕구가 아니다. 철학자는 본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때는 이글거리는 사막을 걷기도하고, 어떤 때는 오아시스의 달콤함에 취해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이처럼 철학자의 삶은 어둡고 긴 고독의 터널을 견뎌내야 하는 삶이기도 하지만, 고독의 한복판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신화 속 인물이기도 하다.

아낙시만드로스처럼 철학자에 있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반성과 의문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태어나서 배우고 성장하면서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여러 명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삶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부모, 스승, 친구 등일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는 사람 중에서도 ‘스승’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등불과 같은 존재이다.

인생에 있어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거나, 캄캄한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 자신의 앞길에 등불이 되어줄 스승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스승의 발자취는 나의 인생이며, 받아들이고, 반성하며, 앞으로 나아가야할 나침판이다. 끊임없이 묻고, 답하고, 반성하며, 나약한 인간의 의지를 저 거대한 우주의 힘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자! 그대의 가슴에 커다란 스승의 그림자를 간직하라! 그대는 광야를 달리는 희망의 말처럼 그대의 인생은 희망과 사랑으로 가득 찰 것이다.




윤재은(Yoon Jae Eun)

건축가이며 공간철학자 윤재은은 현재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홍익대학교 건축학박사, Pratt Institute Master of Interior Design, New York, USA, Denmark International Study, affiliated with University of Copenhagen, Architecture & Design Program, 홍익대학교 디자인 학사를 졸업했다. 또한 UC Berkeley 건축대학에서 연구교수로 디지털건축을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건축전문서적 Archiroad 1권(Hyun), 2권(Sun), 3권(Hee)가 있으며, 장편소설로 비트의 안개나라, 시집으로 건축은 나무다, 건축은 선이다의 저서가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는 헤이리 블랙하우스, 25.7 하우스, 송해븐, 유진타워, 성북동 보현재주택 등이 있다.


[윤재은 칼럼리스트 dreamas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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