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김정은은 ‘블랙스완’인가
이태희 편집국장 | 기사작성 : 2018-04-02 12:11   (기사수정: 2018-04-02 14:31)
951 views
Y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국장)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진의(眞意)’ 두고 지구촌은 논쟁 중

다수 전문가들은 김정은을 전형적인 거짓말쟁이 공산주의자 전형으로 규정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진의(眞意)’를 두고 지구촌이 논쟁중이다. 김정은이 과연 핵무기를 포기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국내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부친 김정일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기점으로 벌여왔던 ‘벼랑끝 전술’ 놀음이 재연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김정은도 아버지처럼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면 핵사찰을 받겠다고 했다가, 돌연 약속을 파기하고 핵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거짓말쟁이’ 공산주의자의 전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방언론들도 심드렁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사설을 통해 “북한 독재자에게 소박한 양보만 기대하라”고 주장했다. 핵은 보유하고 미국본토 타격 능력만 제거하는 게 김정은의 마지노선이라는 게 이 매체의 전망이다.

국내 보수층은 더 극단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대북경제제재를 지속함에 따라 살림이 궁핍해진 김정은이 중국,한국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고 단언한다. 김정은이 다시 ‘핵 공갈’ 카드를 꺼내들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심각한 어조로 조언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 이니셔티브’는 어리석음의 산물이다. 자청해서 김정은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꼬락서니가 된다.


‘흰색 백조’라는 고정관념은 ‘검은 백조(the black swan)’의 출현을 간과

김정은이 핵포기를 실천하는 블랙 스완이 될 확률 변수는 3가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김정은은 전 세계인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는 중일까?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과 5월 북미정상회담의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는 김정은 본인도 고정불변의 전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놀라운 변화의 마그마는 꿈틀대고 있고, 그 결말은 김정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식자층은 여전히 김정은을 비난하고 문 대통령을 조롱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진실을 바라보기 보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변화 자체를 외면하려는 성향의 산물이다. 

발생 가능성이 없지만 사실은 존재하면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갖는 현상을 ‘검은 백조(the black swan)’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흰색 백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검은 백조의 출현을 알아차리지 못하곤 한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복사판이라는 판단도 ‘흰색 백조’의 함정에 빠진 결과이다. 오히려 김정은이 완성된 핵무기를 밑천으로 삼아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받은 후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서려는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는 게 현재 진행 중인 변화를 냉철하게 이해하는 방식이다.


NPT탈퇴한 북한이 ‘인도-파키스탄’ 모델로 핵보유국이 될 확률은 0%

'한반도 비핵화' 는 선대유훈이라는 김정은 발언은 '현실 정치'에 기반

김정은이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을 ‘확률 게임’으로 따져보면 긍정적 변수는 3가지이다. 첫째, 김정은은 독재체제의 존립과 북한경제 발전을 위해 완성된 핵무기를 활용하는 방식과 관련해  ‘핵보유국’ 카드는 현 단계에서 포기했다. 지난 해 연말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전문가들은 북한이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김정은 체제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기반으로 한 핵무기 20~60기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완성했다는 게 한미정보당국의 공통된 판단이다.

NPT에서 인정하는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5대 강대국이지만, ‘친미 국가’인 인도와 파키스탄도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있다. 그 권한은 미국이 행사했다. 인도는 중국견제용으로 인도와 분쟁중인 파키스탄은 미국의 대테러 전쟁 전초기지 제공에 대한 기여를 인정해 ‘형님 나라’ 미국이 하사품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는 그런 옵션을 전혀 고려한 적이 없다. 더욱이 인도와 파키스탄은 NPT에 가입한 적이 없는 상태에서 핵무기를 완성했다. 북한은 반미국가일 뿐만 아니라 NPT를 탈퇴하고 핵을 개발한 유일한 국가이다. 미국이 북한을 위해 “NPT가입 국가는 추가로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규범을 깰 리가 없다. 북한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될 전제조건을 애당초 보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공식이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 유훈이라는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전달한 것도 '현실정치'에 기반한 발언이다. 북한이 ‘인도-파키스탄 모델’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은 0%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는 방안을 협상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돼있다면 ‘핵포기’가 유일한 카드이다.


쟁점은 핵포기의 수순과 방식일 뿐이다. 완성된 핵무기를 쥔 김정은은 이미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할 ‘블랙 스완’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을 마무리한 김정은, ‘정상국가’ 꿈꾸는 중

둘째, 김정은은 ‘불량국가(rogue state)’ 혹은 ‘악의 축(axis of evil)'에서 벗어나 ’정상국가'가되겠다는 꿈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단과의 만찬장과 시 주석 부부와의 만남에서 미모의 부인 리설주를 대동했다.

이는 서구적 관행인 ‘퍼스트레이디 외교’의 모양새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이나 한류 스타 송혜교와의 미모비교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리설주 카드는 정상국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방중에서 김정은은 ‘황제’의 반열에 오른 시주석과 대등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강한 권력욕은 열등감의 반영이기도 하다. 트럼프에 의해 ‘꼬마 로켓맨’ 혹은 ‘미치광이’로 조롱당했던 김정은은 한국 특사단에게 “그런 대우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포함해 무수한 정적을 제거했지만, 그 피묻은 손을 닦아내고 번듯한 국가원수가 되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모든 제국의 역사에서 치열한 권력투쟁기가 마무리되면 문화의 시대가 오듯이, 젊은 김정은도 잔인한 기억을 지워내고 번듯한 지도자로 대우받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미국이 인정하는 정상국가가 되려면 핵무기 폐기가 전제조건임은 물론이다. 김정은이 ‘블랙 스완’이 될 가능성을 높여 주는 두 번째 확률 변수이다.


‘총’으로 완성시킨 김정은 독재정권, ‘빵’으로 대중의 지지를 빚어내야

황제가 된 시주석은 독재정권과 시장경제의 성공적 결합을 증명

셋째 변수는 ‘북한 경제성장’에 대한 김정은의 절박함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인맥은 물론 혈육에 대한 잔인한 숙청과정을 거쳐 정치권력을 굳힌 상황에서 ‘대중의 지지’는 독제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한 유일한 기반이다. 공산주의 정권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대중의 지지는 ‘빵’이 빚어낸다.

김정은이 외부세계에서 광기어린 냉혈한으로 투영되는 것과 달리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인기를 구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주의는 후퇴하지만 경제는 좋아지는 아이러니는 종종 벌어진다. 김정은 체제도 그런 구도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북한 경제성장율은 3.9%이다. 나쁘지 않은 수치이다. 중국 등은 6~7% 정도로 높게 추정한다.

핵무기 포기를 대가로 ‘체제 안전 보장’ 및 ‘경제지원’을 얻어내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중국식 개혁개방’을 완성할 때, 김정은 체제는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점에서 중국은 김정은에게 희망적인 사례이다. 독재정권과 시장경제의 결합이 지속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시 주석은 공산당 내의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파괴하고 장기집권의 길도 열었다. 김정은에게는 낭보이다. 철권을 휘둘러도 빵이 넘쳐난다면 정권은 강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리비아식 모델’과 김정은의 단계적 해법 충돌 예상

김정은을 블랙스완으로 변신시키는 게 현명한 정치 지도자들의 과제

분수령은 5월 북미정상회담이다. 이 때 김정은이 블랙스완으로 변신할지, 아니면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처럼 흰색 백조에 머무르고 말지가 어느 정도 판가름이 난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최대 충돌지점은 ‘북핵폐기의 수순’이다. 

트럼프 측에서는 이미 ‘선(先)핵무기 폐기-후(後)체제보장 및 경제적 지원’이라는 ‘리비아식 모델’로 못박는 분위기이다. 미국은 지난 2003년 철저하게 CVID에 기반해 리비아와의 핵무기 폐기협상을 벌였다. 3단계에 걸쳐 리비아의 핵무기를 완전폐기한 후 리비아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약속을 충실하게 이행하자 2006년에 연락사무소를 대사관으로 승격시켰다. 체제보장 약속을 지킨 것이다.

카다피는 2011년 미국이 지원한 반군에 의해 살해됐지만, 그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의 약속 위반’이라는 견해와 ‘잔혹 정치’를 지속한 카다피의 업보라는 지적이 공존한다.

물론 김정은은 리비아식 해법에 대해 이미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훈에 따른 일관된 입장이란 점을 재확인하며 "한국과 미국이 선의로 단계적·동시적 조치를 취하면 비핵화는 실현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핵무기 폐기를 위한 단계별 조치를 취할 때 마다 그에 상응하는 체제보장 조치, 대북경제제재 해제 그리고 경제적 지원 등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한국과 미국의 ‘선의’라는 표현을 쓴 것도 주목된다. 트럼프가 리비아식 모델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북한 사정도 봐달라는 뉘앙스이다. 호전적이기보다는 ‘겸손 모드’이다.

결국 김정은을 흰색 백조라고 몰아붙이기보다는 블랙스완으로 변신시키는 게 현명한 정치 지도자들의 과제이다.


[이태희 편집국장 youyen2000@news2day.co.kr]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