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89) 힐튼 부산을 가다 - 2부
윤혜영 선임기자 | 기사작성 : 2018-03-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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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인생의 '소확행' 챙기기, 아이에게 배우다
 
대가족의 식비 아끼기 위해 호텔에서 밥을 하던 할머니에 대한 추억
  
수영을 하고 단잠에 빠졌던 아이들이 깨어나자 간단한 간식을 먹기 위해 미팅룸4로 향했다. 5시부터 7시까지 간단한 주류와 함께 핑거푸드를 제공하고 있었다.
 
맥주와 와인, 위스키등이 구비되어 있었고 살라미 피자, 컵 샐러드, 버팔로 윙, 미니케익과 음료등의 먹거리가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고객 응대 장소인만큼 어린이 손님이 많았는데 좁은 룸은 아이들 특유의 소란스러움으로 꽤 시끄러웠다. 두 명의 아이가 서로 붙잡고 도망치며 고성을 지르며 뛰어다녔는데 아이의 부모들은 맥주를 마시며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저지도 하지 않았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이어폰 없이 애니메이션을 큰 소리로 틀어주고 있었다. 놀러와서 즐기는건 좋지만 본인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기분을 망치는 행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심. 이런 타입의 성인에게는 정중히 양해를 구하더라도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많다. 그저 조용히 피하는게 정신건강에 좋다. 서둘러 음식을 먹고 나와버렸다.
 


▲ 사진=윤혜영

다시 이터널 저니로 가서 큰아이에게 동화책을 좀 읽어주고는 객실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킹베드는 성인 두 명과 아이 두 명이 함께 자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 눈이 뜨인다. 부스럭거림에 깨어난 남편과 아이들을 챙겨 조식을 먹으러 B2층에 위치한 다모임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창가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바닷가에 해가 떠오르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었지만 식당 내부가 워낙 넓어 음식을 가지러 두어번 다녀오니 힘들다.
 
해가 바다 위로 올라오자 용암이 끓듯 바다가 붉게 번졌다. 회색빛 바다는 오렌지빛으로 서서히 물들다가 잿빛으로 짙어지다가 해가 완전히 솟아오르자 차가운 블루로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런 멋진 풍경을 가슴에 담는 것. 그것이 인생의 소확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이는 초콜렛 분수대를 좋아하여 마시멜로를 초코에 적셔 두 번 먹고 기분이 좋아 수다를 조잘거렸다. 유치원에 있는 남자친구랑 결혼할거라고 한다. "너 혼자 결정한거야? 그 아이에게는 결혼할건지 물어봤어?"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아니. 유치원 가는 날 나랑 결혼할건지 물어봐야지"
 
"하린아. 결혼이 뭐야?"
 
"좋아하는 사람이랑 맛있는것 먹으러 다니고 같이 테레비전 보는거야. 매일매일 같이 노는거야"
 
아이의 말대로 인생을 이렇게 단순하게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식사를 마치고 아이가 타고 싶다던 디트로네를 타러 갔다. 만원을 주고 15분의 시간 동안 아난티 타운을 몇 바퀴 돌았다. 나는 유모차에 둘째아이를 태우고 해바라기를 했다. 해풍에 실려온 짭쪼름한 향에는 미역과 김, 홍합, 물고기 비늘, 돌멩이와 소금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 사진=윤혜영

호텔에서 제공하는 워터하우스 온천 쿠폰으로 다시 수영을 하러 갔다. 아난티코브 앱이 깔려있으면 30%할인을 해주었다. 지하 600M에서 뽑아내는 온천수라고 한다.
 
사우나 시설과 크고 작은 온수풀, 야외풀로 무척 넓고 다양하여 연령층에 상관없이 놀기 좋았다. 돈과 정보를 잘 활용하면 참으로 놀기 좋은 세상이다.
 
나는 이십여년 전에 처음으로 호캉스라는 것을 경험해보았다. 당시 큰 회사를 운영하던 작은아버지가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할머니, 고모, 우리식구들까지 포함해 부산 그랜드호텔에 데려가주었다.
 
그전에 나에게 바캉스란 다리 밑에 텐트를 치고 물에 수박을 한덩이 띄워놓고 짜증스런 더위를 견디는 것인줄 알았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작전이 치열하고 겨우 자리를 찾아 돗자리를 깔고 나면 미친듯이 엉겨붙는 똥파리들을 날리며 무더위의 지리멸렬함을 견디는 것이었다.
 
그런데 호텔에서의 바캉스라니!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한 객실에서 바라보는 한낮의 백사장은 아비규환 그자체였다. 내가 그곳에 속하지 않은것을 감사해하며 수영장과 로비를 유유히 다니며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들. 그래 이게 바로 휴가라는 것이지.
 
로비 소파에 반쯤 누워 뜻도 모르는 영자신문을 펼쳐놓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객실로 올라갔을 때였다.
 
문을 열자마자 훅 다가오는 된장의 냄새. 눈 앞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가 부탄가스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전기밥솥의 추가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때마침 객실정리를 하러 메이드가 도착하였고, 그녀가 기함을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찰나 할머니가 만원짜리를 손에 얼른 쥐어주며 손가락으로 '쉿'을 하였다.
 
할머니는 대가족의 식비를 아끼기 위해 점심밥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일인데 가끔 떠올리면 호텔 객실에서 밥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터지곤 한다.
 
그때 이십대였던 나는 어느새 불혹을 넘겨 아이를 둘이나 두고 있고, 그 시절의 사람들은 세상을 등졌거나 어른들은 노인이 되었고, 아이들은 청년이 되었다.
 
간혹 삶이 우울하거나 슬픈 날에는 지나간 시절과 그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들이 그립다. 기억은 시간의 창고이다.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쌓기 위해 더 의미있게 오늘을 살아야겠다.
 


▲ 사진=윤혜영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평범한 일상보다 훨씬 빨리 흐른다. 어느새 오후가 되었고 석양이 물들기 시작했다. 인생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아름답고 획기적이지 않다. 일상은 지루하고 걱정거리는 산재해 있으며 나이에 따른 의무도 피해 갈 수 없다.
 
그 괴로움을 잊기위해 우리는 중간중간 여행을 떠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를 달래야 한다. 인생은 스스로 가꿔야 하는 화단이다. 토양이 좋지 않으면 양질의 퇴비를 써서 나만의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야 한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윤혜영 선임기자 geo05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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