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 이야기](22) 시원섭섭한 초등군사반(OBC) 교육의 추억과 유비무환(有備無患)
김희철 칼럼니스트 | 기사작성 : 2018-03-1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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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군반 학생 장교들이 소대방어 전술 명령 하달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생도의 통제된 생활을 벗어나 장교의 자유와 책임을 경험하는 초등군사반 교육

국민가요인 故김광석의 ‘입영열차’ 노래에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어머님께 큰 절하고~“라는 가사가 항상 입가에 맴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지는 야전부대도 훈련소도 아니라 광주에 있는 보병학교였다. 부임전 재교육을 위해 모든 초임장교가 반드시 거쳐 가는 과정으로 보병, 포병, 기갑, 공병, 통신 등의 각 병과학교에서 약 16~20주 동안 초등군사반(Officer's Basic Course) 교육을 받았다. 졸업 성적은 제대할 때까지 출신별 진급과 선발에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초등군사반 교육 기간은 생도생활 4년 동안의 통제 받는 생활을 벗어난 최초의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자유는 책임을 동반한다. 숙달 안된 초임장교들에게는 자유가 방종이 될 수도 있었다. 매일 위병소를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는 외출이 허용되니까 아침 수업이 시작되면 여기저기에서 밤새 마신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심지어는 지난 밤 과음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벌점을 먹더라도 출근을 못하는 장교도 있었다.

게다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1년 남짓 지나지 않아 군복을 입고 학교밖을 다닐 때에는 시민들의 눈초리에 신경이 쓰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부모 같은 마음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느낌이었다.

보병학교 초등군사반 교육은 타 병과학교와 달리 대부분 생도생활 동안 하기군사훈련을 통해 숙달한 지휘통솔, 참모학, 화기학, 소대~대대 및 제병협동전술훈련 등 각종 훈련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인지 교육보다는 얼마 후 각자의 임지로 떠나는 동기들과의 이별이 더욱 아쉬운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광주 보병학교 울타리 밖의 인접한 술집은 다 가 보았다. 특히 휴일 광주시내 식당에서 먹어본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푸짐한 전라도 전통밥상은 잊을 수가 없다.


‘불모지대’의 감동과 현충일 기념 50Km 마라톤의 뼈아픈 교훈

필자는 초군반교육 기간 중 우연히 일본의 작가인 야마사키 도요코의 ‘불모지대’ 책을 접했다. 1978년 5권의 전집으로 출간된 이 책은 일본 대본영 작전참모였던 ‘이키 다다시’가 종전후 소련군 포로수용소에 있다가 풀려나 제 2의 인생을 종합상사에 취업하여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동군 시절 상사이기도 했던 ‘세지마 류조’의 일대기를 주축으로 일본의 종합상사인 ‘긴끼’가 형성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었다. 그 회사는 일본군의 참모조직을 본떠서 만들었고, 이 책은 2009년 일본 TV 드라마로 성황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군생활을 막 시작하는 입장이었지만 제대 후 군 보다 더 넓은 사회에서 사관학교 출신 선후배들이 끈끈한 의리와 군에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서 심장이 마비될 것 같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책 내용이 좋아 반복해서 읽는 동안 바로 전역해서 ‘이키 다다시’나 ‘효도 신이치로’ 처럼 상사원으로 국가 경제를 위해 국제적으로 직접 뛰고 싶은 충동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주인공 ‘이끼 다다시’의 사회적응 삶을 그린 소설 ‘불모지대’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마침 현충일이 되어 휴일이 되자 새로운 도전을 갖게 하였다. 룸메이트였던 김종주 동기의 마라톤 제안에 동의를 하고 준비 없이 뛰어 들었다.

코스는 광주시내 동쪽 지방 국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출발하여 화순 근처인 김종주 소위의 집까지 약 50Km 거리였다. 그동안 생도생활에 단련된 몸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만만치 않았다. 처음 10km는 약 30분 정도 걸렸는데 이 속도면 마라톤 선수도 가능하겠다고 웃으며 달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동기 김소위는 약 한달 동안을 거리를 늘려가며 사전 준비를 했는데 사전 준비를 못한 나는 20km를 넘기자 호흡은 괜찮은데 다리에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점점 속도가 떨어지면서 양 무릎 통증으로 마지막 10km는 걷기도 힘들었다. 김소위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목적지인 친구 집에 도착했다. 같이 뛰지는 안았지만 동기 현창부 소위가 완주 기념품까지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었고 반면에 제대로 뛰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불모지대의 감동은 심장을 마비 시켰고, 사전 준비 없이 무모하게 도전한 마라톤은 두 다리를 마비 시켰지만 어떠한 성취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사전 철저하게 준비해야하는 교훈을 뼈져리게 체험한 순간 이었다.


▲  초군반 학생 장교들이 제병협동(보병과 전차)훈련하는 모습 ⓒ국방부 제공)

‘반면교사’가 된 ‘하얀 시트’ 바바리맨 사건

마라톤의 후유증으로 근 일주일 넘는 시간 동안 학과출장 속도를 맞추지 못해 항상 열외하여 절뚝거리며 이동해야 했다. 건강이 회복되자 교육과목이 제병협동으로 바뀌었다.

제병협동훈련은 각 병과로 흩어져 교육받던 동가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돌이켜 보면 그 훈련 후 헤어지면 다시 보기란 매우 어려울지도 모르기에 애틋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시간이었다.

주로 보병과 포병, 기갑, 병과가 협동훈련의 주인공이었다.

그중 기억이 나는 것 중 하나는 ‘전장소음체험훈련’으로 표적 부근 벙커에 들어가 머리위로 떨어지는 105mm, 155mm 포병탄 등의 파열음과 충격을 직접 체험하는 훈련이다. 방어전투시 중과부적으로 위급한 상황일 때에는 아군 머리위로 ‘진내사격’을 요청한다. 6.25 남침전쟁시 많이 사용했던 전술이다. 몇 일 뒤에는 모두 전방 각지로 부임하는데 실제 전장 감각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야간 훈련이 없는 날이면 생활관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동기들은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다보니 이별의 아쉬움에 젖어 있었다. 그게 화근이 됐다.

어느 날 새벽에 비상이 걸렸다. 동기생 전원이 전투복으로 연병장으로 집합하라는 통보였다. 무슨 일인가 놀라서 나가보니 단상에는 정형진 소령(30기, 예비역 소장)을 비롯한 보병학교에 근무하는 영.위관급 육사 선배들이 모두 있었고 분위기는 매우 살벌했다.

몇명의 동기생들이 심야에 바바리맨처럼 하얀 시트로 몸만을 가린 채 생활관 울타리 밖의 다방 같은 주점에 들어가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며 술을 마시다 지역주민의 신고로 난리가 난 것이다.

사관학교 출신의 망신을 다시킨다며 선배들은 일장 연설을 한 뒤 기합을 주었다. 후배들을 바르게 선도하려는 선배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생활관에서 조용히 취침 중이었는데 한밤중에 홍두께 격이었다.

그러나 지옥과 천당도 인솔해 간다는 군대이다. 하물며 군과 국가의간성인 사관생도 출신들은 누구 하나의 실수로 인해 전체가 매도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생도생활 동안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귀 따갑게 들어 왔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군생활을 해야된다는 결집의 기회가 되었다.


지뢰사고로 순직한 선배의 가슴 아픈 소식이 만들어낸 ‘유비무환’

제병협동훈련이 끝나자 초군반 교육도 막바지가 되었다. 그때 전방에서 슬픈 소식이 우리를 긴장 시켰다. 1년 선배 36기 故 신현준, 박흥수 중위가 전방 사단 수색대대 DMZ 작전중 지뢰 사고로 순직한 것이다.

바로 몇 일 뒤에는 그 자리로 우리들이 가야만 한다. 참 군인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국가를 위해 뛰어들어야 한다. DMZ 지역은 대부분 보병 장교들이 담당하기 때문에 일순 생활관은 숙연해지면서 긴장도 감돌았다.

동기회에서는 제병협동훈련장 사건에서도 느꼈듯이 선배들의 불의 사고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앞에 닥쳐온 현실로 받아들이고 의견을 모아 지뢰 덧신을 만들기로 했다. 희망자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자신의 군화를 동기회에 맡겼고, 얼마 후 신발 밑창에 철판을 장착한 지뢰 덧신을 받을 수 있었다.

한 동기생은 한 술 더 떴다. 간단한 조작으로 금속을 식별할 수 있는 지뢰 탐지기를 만들었고 대부분의 동기들은 자비를 들여 지뢰탐지기와 지뢰덧신을 준비하고 전방으로 배치되기만 기다렸다.

아마도 필자는 준비없이 무모하게 시도한 50km마라톤에서 다리가 마비되었던 체험이 이런 준비를 하게 만든 것 같다. 훗날 임지에 부임해 갔을 때, 그 곳의 군 선배들은 이렇게 준비를 하고 온 필자를 비롯한 동기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함께 신뢰를 받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한편, 생도시절 태권도부장을 했던 동고장호 동기는 야전부대에서 태권도 교육이 강조된다며, 검도와 유도를 했던 동기들에게 태권도 유단증을 받도록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생도시절 검도 2단을 땄으나 태권도 유단자증이 없어 걱정이었는데, 동기의 애정 어린 배려속에서 노력을 거듭해 초군반에서 유단자증을 받게 되었다.


290명의 동기생들과 함께 청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생도생활 4년에 이은 초군반 4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청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딜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동기회에서 갑자기 소집해 강당에 모였는데, 육군본부에서 일부 인원의 부대 부임을 통보했다. 전방 사단 중 가장 힘들고 오지인 3, 15사단 부임자 발표였다. 필자도 1군 사령부의 예하부대인 15사단 발령자에 포함되었다. 15사단은 겨울에 가장 추운 대성산과 사단 전 지역이 비포장도로인 산악 지형, 지역내 최고 높은 기관장이 이장이라는 야전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준비는 끝났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군 통수권자로부터 이등병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으로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하는데 한 몫을 다하려고 야전으로 빨리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 했다. 뜻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졸업 후 보병학교 초군반까지 절차탁마(切磋琢磨)로 무장한 290명의 동기들은 국가의 명을 받아 이제 견습생이나 계약직이 아닌 야전부대 소대장으로 진짜 군생활을 시작했다.




- 육군사관학교 졸업(1981년)
 - 동국대학원 외교국방(석사)
 - 한남대학교 정책학 (박사과정)
 - 5군단사령부 작전참모
 - 3군사령부 감찰참모
 - 8군단사령부 참모장
 - 육군훈련소 참모장
 - 육군대학 교수부장 
- 육군본부 정책실장
 -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
 - 군인공제회 관리부문부이사장

- (현)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 (현)안보팩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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