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최태원 SK그룹 회장 ①경력: 글로벌 SK를 만들어낸 ‘야성적 충동’의 리더십
권하영 기자 | 기사작성 : 2018-03-0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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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투데이=권하영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미지 제공: 민정진 화백] ⓒ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권하영 기자)
 
과감한 ‘퀀텀점프’ 해낸 최종현 선대회장의 결단력 이어받았다는 평가
 
재벌2세임에도 경영학 대신 물리학 전공…과학적 사고로 사업 통찰력 키워
 
IMF 사태 직후 회장직 올랐음에도 뚝심 있게 글로벌화 전략 추진

 
한국의 재벌 2세 또는 3세 오너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평가는 섣불리 단정하기 어렵다. 소위 ‘대물림 경영’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긍정적이지 않은 탓도 있다. 하지만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과감한 경영과 사업 통찰력으로 2세 경영인 중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섬유산업으로 출발한 내수기업 ‘선경’을 오늘날의 글로벌 SK로 탈바꿈한 데에 그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국내 재계 3위의 수출기업인 SK그룹의 모태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탄생한 ‘선경직물’이었다.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은 1953년 전쟁 직후 직물공장을 세웠고, 그의 동생 최종현 선대 회장이 이어 받아 선경그룹으로 재탄생시켰다. 이후 정유와 통신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한 선경은 미래 수출기업으로 가는 활로를 다졌다.
 
특히 섬유기업에서 정유·통신 기업으로 전면 전환했던 이때의 과감한 진로변경은 선경이 탄탄한 내수기업으로 한 단계 진화하는 이른바 ‘퀀텀점프’가 되었다. 당시 최종현 회장은 일각의 우려와 만류에도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석유 사업에 진출해 경영 혁신을 이뤄냈고, 이후 대규모 흑자를 일궈내자 만족하지 않고 다음 먹거리로 통신 사업을 시작했다.
 
최태원 회장은 이러한 선대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종현 회장의 장자인 그는 젊은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물리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흔히 재벌 2·3세들이 기업 승계를 위해 경영학을 배우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하면 매우 남다른 결정이었다. 최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과학적 사고와 논리적 학문을 배우는 것이 기업 경영에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조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격적인 경영 수업은 1991년 선경인더스트리에 입사하면서 시작됐다. 최 회장은 당시 부장으로 입사해 선경아메리카 이사대우, 선경 상무이사를 거쳐 SK주식회사의 대표이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최종현 회장의 별세로 SK주식회사의 회장직에 오른 것이 1998년이었다. 38세의 젊은 나이로 회장이 된 그는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직후 그룹을 경영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선경은 외환위기가 들이닥친 1997년 그해에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진행 중이었다. 사명 ‘선경’을 ‘SK’로 변경한 것도 바로 이 때다. 그러나 최 회장은 글로벌화 전략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듬해 그는 중국정보산업부 장관 면담을 시작으로 네트워크를 넓히며 중국 시장을 필두로 한 글로벌 경영을 강화했다.
 
실제로 최 회장은 3세 경영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대외 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2년에는 세계 최대 경제포럼인 다보스 포럼(WEP)의 ‘동아시아지역경제지도자회의’ 공동의장을 맡았으며, 이후 아시아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중국의 ‘보아오 포럼’ 이사로도 활동했다.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대형 M&A 잇따라 성공, 글로벌 수출기업으로 키워
 
하이닉스 인수 당시에도 “나의 ‘야성적 충동’ 믿어달라”며 임원 설득

 
SK그룹이 현재의 글로벌 수출기업으로 발돋움한 데에는 최태원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주효했다. 최 회장은 재계 안팎으로 인수합병(M&A)의 귀재로 불릴 만큼 과감한 투자와 사업전략으로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특히 대내외적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몸을 사리기보다는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 회장은 이러한 자신의 경영방식을 스스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에 빗대어 설명한 바 있다. 케인즈가 설파한 야성적 충동이란 경제가 항상 인간의 합리적 판단에 의해서만 돌아가지 않음을 지적한 것으로, 인간의 비경제적인 본성 또한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요소이자 잠재적인 창의성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태원 회장의 야성적 충동이 두드러진 것은 2012년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 당시였다. 지금은 SK그룹의 최대 ‘실적효자’로 떠오른 하이닉스지만 인수여부를 결정할 때만 해도 반도체 시장은 가격 하락으로 경쟁사들조차 투자를 줄이는 시점이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영실적이 악화됐던 SK가 전혀 다른 시장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큰 위험부담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그룹 임원들에게 “회사 발전을 위해 새로운 사업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자신의 ‘애니멀 스피릿’을 믿어달라”고 설득했다. 이를 위해 최 회장은 직접 반도체 관련 스터디 모임까지 만들며 오랜 기간 반도체 산업의 미래가치를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그의 야성적 충동이란 장고(長考) 끝에 내린 확신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최 회장은 그해 하이닉스 인수에 성공한 뒤 잇따라 OCI머티리얼즈, LG실트론 등을 인수하며 반도체 사업 강화를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는 직접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을 챙기며 사업경쟁력 제고에 나섰다. 이 밖에도 최근까지 동양매직 인수, 다우케미컬의 ‘에틸렌아크릴산(EAA)’ 사업 부문 인수, 글로벌 제약회사 BMS의 아일랜드 생산 공장 인수 등 사업부문을 가리지 않는 과감한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SK그룹은 명실상부 재계 3위의 수출기업으로 떠올랐다. 최 회장의 취임 당시 32조 원에 불과했던 그룹 자산은 지난해 5배가 늘어난 170조 원으로 껑충 뛰었다. 매출 역시 1997년 말 36조 원에서 2016년 말 기준 125조9000억 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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